[시사IN] 엄마들은 방역만큼 방문이 절실하다(2020.07.10.)

지원단l2020-07-10l 조회수 4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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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첫걸음 사업’은 아기가 만 2세가 될 때까지 간호사와 사회복지사가 직접 집으로 찾아와 육아를 상담한다. “엄마들의 숨통을 트이게” 해준 이 방문이 코로나19로 중단되었다. 엄마들은 “허공에 떨어진 기분”이다.

 

ⓒ시사IN 이명익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에 거주하고 있는 임정환씨 가족. 코로나19로 간호사와 사회복지사의 정기 방문이 사실상 중단되었다.

 

7개월 된 소망이는 서울 영등포역 롯데리아에서 생애 첫 이유식을 먹었다. 6월22일 더위를 피해 쪽방을 나선 임정환씨(39)와 류성민씨(34)는 낯선 이유식도 곧잘 먹는 딸을 바라봤다. 원래는 한 달 전부터 이유식을 먹여야 했지만 쪽방에는 음식을 보관할 냉장고가 없었다. 이날 기온은 36℃, 체감온도는 39℃를 넘어서고 있었다.

 

지적장애를 겪는 부부는 분유를 타 먹이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의 발달 상태에 맞춰 분유량을 조절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일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보건소 간호사 덕분에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지난해 12월 보건소에 유축기를 빌리러 갔을 때 알게 된 ‘서울아기 건강 첫걸음 사업(첫걸음 사업)’을 통해 만난 간호사는 코로나19 유행 이전까지만 해도 매주 쪽방을 찾아왔다. 이 시기에 아기가 옹알이를 해야 하는지, 어떤 움직임을 보여야 하는지 알려주고 그에 맞춰 놀이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사회복지사도 부부의 쪽방을 정기적으로 방문했다. 소망이가 기어 다닐 시기가 됐는데도 기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이상하게 생각한 사회복지사가 엎드린 아이의 발꿈치를 밀어주자 그제야 소망이가 앞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집이 너무 비좁다 보니 아이는 움직임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었다. 엄마가 누우면 아빠는 옆으로 돌아누워 웅크려야 하는 비좁은 쪽방이었다. 사회복지사와 간호사는 임대주택 공고가 뜰 때마다 부부에게 알려주며 입주를 신청해보라고 권했다. 정보를 접하는 것 자체가 높은 장벽인 부부에게 필요한 맞춤형 서비스였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이 모든 조력을 사실상 중단시켰다.

 

첫걸음 사업은 2013년 서울시에서 처음 시작했다. 아기가 부모와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시기인 만 2세(24개월)까지 간호사와 사회복지사가 집으로 찾아와 육아를 상담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산모 및 조기아동기 지속적 가정방문(MECSH)’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다른 점도 있다. MECSH는 처음부터 선별된 고위험군 가정만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 첫걸음 사업은 보건소를 방문해 신청한 모든 임산부를 찾아간다.

 

박은영 사회복지사는 “이제 서울시에서 누가 아기를 낳으면 웬만하면 우리가 다 알아요”라고 말했다. 임신부가 엽산제나 철분제를 받으러, 혹은 산모가 물품 대여나 예방접종을 위해 보건소를 찾으면 자동으로 첫걸음 사업에 등록되기 때문이다.

 

‘모든 임산부에게 동일하게 이루어진다’는 등록서의 첫 문장은 대상자의 위화감이나 거부감을 줄여준다. 그중에서 도움이 필요한 가정을 대상으로 방문을 이어간다. 지속적 방문은 임산부의 우울증 정도나 자해 위험도, 사회적 지지 관계망(보살펴주거나 소통 가능한 사람들의 네트워크) 유무 등에 따라 결정된다. 7월부터 서울시뿐만 아니라 전국 20개 지자체로 확대 시행될 계획이지만 코로나19가 가장 큰 변수다.

 

심채민씨(38)는 친가나 시가의 육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산모다. 남편이 회사에 있는 동안 온종일 집에서 아기와 단둘이 있어야 하는 심씨는 특히 이야기를 터놓을 곳 없는 답답함이 크다고 말했다. 남편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남편은 ‘원래 애들은 다 그렇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이럴 바엔 차라리 물만 주면 자라는 식물을 키우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심씨는 모유 수유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보건소에 갔다가 첫걸음 사업에 등록했다. 친한 친구나 남편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던 내밀한 감정을 간호사에게는 털어놓을 수 있었다. “신랑한테 ‘애가 울 때 내 머리가 너무 아파’ 이런 이야기는 할 수 있어요. 근데 ‘애가 울 때 애를 한 대 때리고 싶어’ 이런 말은 못해요. 한번은 애가 너무 울길래 저도 모르게 애를 밀친 적이 있었어요. 애가 눈이 땡그래져서 저를 쳐다보더라고요. 신랑이더라도 나를 이상하게 볼까 봐 그런 얘기는 못해요. 엄마는 항상 참고 사랑만 줘야 한다는 기대가 있으니까. 그런데 선생님한테는 이런 감정 저런 감정 다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이 프로그램은 육아도 육아지만 무엇보다 엄마들의 숨통을 트이게 해줘요.”

 


ⓒ시사IN 신선영
‘첫걸음 사업’ 방문 상담을 해온 박은영 사회복지사, 김은영 간호사, 이영애 간호사(왼쪽부터).

 

상담에서 다루는 주제는 개인마다 각각 다르다. 간호사와 심씨의 대화에서 육아 상담이 차지하는 비중은 30% 정도다. “지난 한 주 동안 아이가 어땠는지 기록해둔 걸 쫙 이야기하고 나면 이제 그걸로 인해 제가 느낀 감정에 대해서 말해요. 선생님이 ‘어머니는 틀리지 않았다. 어머니의 방식이 정답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아이한테는 이게 맞다’ 말씀해주시는데 이럴 땐 정말 간호사 선생님이 남편보다 나아요.”

 

상담을 통해 차츰 안정을 찾아가던 심씨는 코로나19가 터지면서 ‘허공에 떨어진 기분’을 느꼈다. 3월부터 간호사 인력이 코로나19 업무로 차출되자 방문 상담 자체가 중단됐다. 고위험군 가정을 방문하며 ‘최후의 동아줄’ 구실을 하던 간호사들은 선별진료소에 배치되어 방호복을 입거나 종합상황실에서 문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문자나 전화, 영상 통화 등을 통해 비대면 업무를 이어나가기는 했지만 개인 시간을 따로 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심씨는 길어야 한 달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갑자기 아플 때 보건소로 전화를 걸었지만 담당 간호사는 코로나19 방역 현장으로 외근을 나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코로나19는 어쩔 수 없는 재난이라고 쳐도 정책은 빨리 대체를 하든지 수정을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모두 코로나 방역 현장으로만 보내놓고 ‘너네는 잠깐 기다려’ 하는데 애들은 안 기다려주거든요. 애들은 계속 커가고 감정이 생기는데…. 제일 힘들 때 잠깐 기다리라고 하면 ‘아이들이 미래의 주역이다’ 이런 말이 와닿지가 않죠.” 기약 없는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심씨는 자신이 아이를 해코지할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들었다. “사실 이유식도 한 번에서 두 번, 두 번에서 세 번 늘려나가야 하는데 저는 몰랐어요.”

 

‘이유식’ 정도에서 상황이 끝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서울 강동구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이영애 간호사(53)는 방문이 중단된 뒤로 걸려온 아찔한 상담 전화를 이야기했다. “제가 지속적으로 방문하던 가정이 있어요. ‘아이가 이 정도 크면 바깥에서 산책도 하고 세상 구경도 시켜줘야 한다’는 제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거예요. 근데 코로나19 때문에 밖을 못 나가니까 베란다에서라도 바깥 구경을 시켜줘도 되느냐고 묻는데 정말 깜짝 놀라서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자해 점수가 있는 산모였거든요. 제가 전화를 붙들고 베란다 근처는 가지도 말라고 말은 해놨는데 전화로만 하다 보니까 너무 불안하더라고요.”

 

산모가 전화 상담을 통해 극도의 불안감이나 우울증을 호소하는 경우 간호사들은 어쩔 수 없이 감염 혹은 감염 매개의 위험을 무릅쓰고 방문 상담에 나서기도 한다. 서울 강북구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김은영 간호사(48)는 “만에 하나 ‘감염은 누가 책임질 건데?’ 이 부분이 제일 커요. 보건소나 서울시에서 책임져주지 않는다면 제가 개인행동을 하는 거잖아요. 보건소에서도 ‘우리가 책임질 테니까 방문 상담 가라’고 말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최일선에 있는 간호사들이 불안을 짊어지고 겨우 허락을 얻어서 조심조심 다니고 있는 상황이에요”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첫걸음 사업’의 상담 내용은 모유 수유부터 산후 우울증, 가정폭력까지 각자 다르다.

 

코로나19 이전보다 상담 업무가 늘었다

강영호 첫걸음 사업 지원단장(서울의대 교수)은 “엄마들이 코로나19 감염이 걱정되니까 집에 찾아오지 말라고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현장에서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0% 이상 신청이 이뤄지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고위험 가정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방문 상담이 절실하다. 코로나19로 인해 그나마 이어지던 사회적 왕래가 모두 끊기면서 고립감을 느끼는 산모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의 위험이 높았던 가정에서는 남편이 실직을 당하거나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그 위험이 증가하기도 한다. 사이가 좋지 않던 고령의 시부모가 외부 출입을 하지 않으면서 산모와 마찰을 빚는 상황도 있다. 박은영 첫걸음 사업 지원단 사회복지사 역시 코로나19 이전보다 상담 업무가 오히려 늘었다고 말한다. “‘부부 갈등이 심해져 집안에서 가정폭력이 일어날 지경이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환기가 되는 공원 벤치에라도 앉아서 상담을 해요.” 첫걸음 사업은 가정폭력을 미리 차단하는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당사자는 그게 가정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주위에서 자기 행동을 가정폭력이라고 인식하고 있고 그 사람이 집에 찾아올 때마다 나를 주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조심할 수밖에 없거든요.”

 

보건소에서 방문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 경우 혹은 산모가 방문 상담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 차선의 선택은 비대면 상담이다. 하지만 문자나 전화, 영상 통화로 충분치 않다. 서울 ㄱ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나영화 간호사(가명)는 비언어적 소통이 불가능해지면서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 “산모 표정이나 제스처에서 확 느껴지는 게 있는데 그런 정보가 없으니까 상담이 훨씬 힘들어요. 간호사 개인 전화번호를 노출할 수 없기 때문에 사무실 전화로 상담을 해야 하는데 집중이 잘 안 되고요. 사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주의 깊게 들어야 하는데 한 공간에서 여럿이 각자 전화기를 붙들고 상담을 하면 잘 들리지도 않아요.”

 

코로나19로 지난 몇 달 동안 보건소 모자보건실도 폐쇄되는 바람에 ‘발굴’되지 못하고 놓친 위기 가구가 많다. 그럼에도 간호사와 사회복지사는 상담을 포기할 수 없다. 자신이 한 산모의 유일한 관계망이자 한 가정의 유일한 가정폭력 감시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출처: 나경희, <시사IN>, 2020.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