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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디어 일다 기사입력 2019.12.23 오전 9:52]
제니퍼 워스의 자전적 소설 <콜 더 미드와이프>
글을 쓰지 않고 두는 역사가 있다. 특히 여성의 일이 그렇다. 낳고 기르고 돌보고 살려낸 여자들의 노동과 감정들은 남아 있지 않다. 이야기들은 끊기고 때로 구전으로 전해진다. 때로 어떤 경험의 자취로 무의식의 동력으로 남아 흔적을 남긴다. 이 세상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역사 뒤에 그들의 생존을 가능하게 했던 여성 노동의 역사가 숨어 있다. 또한 세상을 더 공정하고 평등하게 만들고자 한 여성들의 역사가 숨어 있다.
<콜 더 미드와이프>(Call the Midwife)의 작가인 제니퍼 워스(1938~2011)는 이름 없이 일한 조산사였다. 그녀는 대부분의 다른 직종의 여성들처럼 자신의 역사를 가지지 않았다. 영국에서 ‘조산사’라는 직업은 문학 작품에 등장하지 않았고, 현실에서도 의사의 그늘에 묻힌 존재였고 ‘분만실 문 뒤에 숨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취급을 받았다. 제니퍼 워스는 1998년 어느 날 <미드와이프 저널>에 실린 기사를 우연히 보았다. 그 마지막 문장은 “글을 쓰는 조산사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테리 코츠, ⌜문학 속의 조산사⌟)였다. 그녀는 생각했고, 그 도전을 받아들여 용기를 내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안미선 작가의 똑똑똑, 아기와 엄마는 잘 있나요?
나는 ‘서울아기 건강 첫걸음 사업’의 기획으로 올해 <똑똑똑, 아기와 엄마는 잘 있나요?>(동아시아, 2019)를 펴냈다. 이 책에는 모든 산모와 아기를 위해 닫힌 문을 두드리는 가정 방문 간호사들의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간호사들은 자신들이 본 세계를 나에게 이야기해주었고, 나는 경계를 뛰어넘는 그들의 용기와 노력에 감명받았다.
간호사들은 다른 여성과 아기의 고단한 삶을 목격하고, 그들이 고립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권리를 요구할 수 있게 통로가 되어주었다. 모든 이가 평등하므로 공평하게 기회를 누리고 출발해야 한다는 믿음이 간호사들의 걸음에 담겨 있었다.
“그 산모에게 저는 세상으로 열려 있는 유일한 사람일 수 있어요. 엄마들에게는 유일한 기회고 어떤 엄마에게 우리를 만난 건 유일한 세상을 만난 거니까요.”(110쪽)
“문을 두드리면서 간호사들은 자신이 속한 계층의 경계를 넘어 우리 사회의 민낯이 만들어낸 적나라한 고통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간다. 그녀들이 만난 산모들이 온몸으로 드러내는 건 한국사회의 불평등한 현실과 그 압도적 고통의 무게다. 고립, 소외, 불안, 분열, 폭력, 학대, 가난, 침묵……. 산후우울증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여성이 배제되고 억압된 자리를 나침반처럼 가리키며 증상이 되어 나타난다. 산모들의 이야기를 듣는 건 그들이 세상에서 겪은 비정하고 냉담한 현실과 그 불공평함을 듣는 것이었다.”(334~3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