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겪은 산후우울증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요. 저는 임신 중 심한 입덧 5달, 웬만해선 잘 걸리지도 않는다는 임신성 당뇨까지, 임신 기간 중 마음껏 쉬고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기간은 겨우 한 달이었습니다. 만삭의 몸으로 한여름 뙤약볕에서 음식도 제대로 섭취 못한 상태로 하루 10km씩을 걷고 틈나는 대로 계단 오르기, 아령운동, 요가, 필라테스 하러 다니면서 언제나 혈당 생각뿐이었어요. 아마 자는 시간, 먹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곤 쉴 새 없이 운동했던 것 같습니다. 그랬던 제 자신을 생각하면 너무 안쓰러워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만삭의 체중이 임신 직전 체중보다도 적어서 보는 사람마다 배가 작네! 임산부 같지 않네! 그렇게 지나치듯 하는 소리마저도 저한테는 큰 스트레스였어요. 아마 우울증은 여기로부터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혈당만 제대로 잡고 아이를 건강하게만 낳으면 된다는 일념으로 출산을 맞이하고 나니 무시무시한 독박 육아만 남았어요. 육아서나 산모교실에서 가르쳐준 육아 방법은 정말 말 그대로 이론뿐이었습니다. 실전에서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아기가 사랑스럽기보다는 정말 부담스럽고 무서운 존재로만 느껴졌어요. 아마 옆에서 육아를 현명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는 조력자가 없었기에 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산후우울증이 슬며시 찾아왔습니다.
산후우울증! 그건 정말 남의 일인 줄만 알았어요. 평소 자상하고 집안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남편, 무슨 일이든 저 먼저 생각해주시는 시댁 어른들... 그런데 왜 출산을 하고 나니 저를 걱정하던 주변인들이 모든 육아의 책임 전가와 양육 방식의 간섭을 하면서 상처만 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이런 상황에서 산후조리원 2주, 산후도우미 2주가 끝나고 저는 덩그러니 세상에 아기와 둘만 남았다는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때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그게 바로 보건소 간호사 전화였습니다. 좀더 일찍 전화 연결이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제가 우울감으로 전화도 안 받는 지경이 되어서 같은 번호로 계속 전화가 오니 아기가 6주가 되어서야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어요. 사실 보건소에서 산전검사도 받고 엽산제나 철분제 받으면서 영유아 가정방문도 안내를 받았지만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별 기대가 없었는데 아기 건강을 살펴봐주신다고 해서 신청을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간호사 선생님께서 방문하여 아기 건강과 발달 상황에 대해 체크해주시고, 뿐만 아니라 엄마의 우울증에 대한 상담 더 나아가 아기 놀이와 교육에 관련된 지역 서비스, 엄마 상담을 위한 심화된 서비스 등을 소개시켜주시니 정말 감사했습니다. 무엇보다 매주 찾아오셔서 아기를 키우는 데 필요한 집안 환경을 살펴주시고 일주일 동안 아기와 지내면서 궁금했던 점을 친절하게 답변해주시며 앞으로 발달에 필요한 엄마의 육아방법까지 코치 받으니 솔직히 친정 엄마보다도 더 의지가 되었어요.
아기는 어떻게 재워야하는지, 아기가 왜 우는 건지, 달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좋은지, 모유 수유하는 자세, 아기의 빨기 성향, 아기 수면시간 조절 등 정말 자세하게 묻고 답할 수 있었습니다. 예방접종하러 소아과에 가서 볼 수 있는 소아과 선생님과의 상담은 시간의 제약 때문에 급하게 묻느라 잊을 수 있는 질문까지도 아기를 편하게 돌보며 궁금증을 해결하고, 제가 아기와 지내는 모습을 직접 보시면서 지나칠 수 있었던 문제점도 발견해주셔서 조언과 해결 방법까지 제시해주셨어요. 초보 엄마인 제게 이것보다 더 큰 도움은 없었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의 방문을 통해서 아기를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 싶었던 불안감이 해소되었고, 산후우울증 또한 증상의 원인 해결 방법이 자세하게 적혀진 안내서를 남편과 함께 읽고 나서 남편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었으며, 저에게 조력자가 한명 더 생겼다는 든든함에 저는 더 힘내서 아기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어요. 시댁에서 주던 양육 방식의 간섭도 남편의 생각의 전환으로 막을 수 있었기에 스트레스가 감소되니 감정이 더 안정되었구요. 매일 밤 천사같이 자는 아기를 보며 육아일기를 쓸 정도로 저는 아주 많이 호전되었고 육아를 위해 적극적인 태도까지 갖추게 되었습니다. 산후우울증은 남편의 무한한 지지와 주변인들의 양육 방식의 간섭이 아닌 사랑과 관심이 있어야만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 모두가 알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엄마의 독박 육아가 당연시 되는 우리나라 사회에선 낯설고 불필요하다고 생각되어지는 것이 사실인 것 같아요.
아기를 낳았다고 해서 바로 엄마라는 타이틀이 붙여지지만 엄마라는 역할은 혼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는 이제 깨닫고 있는 중입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지만, 지금처럼 개인적이고 소통하기 어려운 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런데 간호사 선생님께서 직접 산모와 영유아의 건강을 위해 가정 방문을 해주시고, 엄마가 아기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도록 두 살이 될 때까지 지원해주시니 어렵고 힘든 육아를 행복하고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더 용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을 통해서 엄마로서 잘 하고 있다고 지지받고, 도움을 받으니 아이와 함께 엄마로서 사회에 나갈 수 있는 준비가 된 것 같아 저는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 방문하시면 또 어떤 상담을 받을 수 있을지 언제나 기대가 됩니다.
서울시에 사는 임산부와 산모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기들 모두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서비스를 받고 저처럼 또는 더 어려운 상황에 닥쳤다면 도움을 받고 용기를 얻어 건강하게 아기를 키워낼 수 있는 행복한 가정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도봉, 첫아이 엄마)